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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학사 간단 정리, 9. 유물사관

엽미술 2021. 6. 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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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의 중국은 이미 마르크스주의가 정치와 사회 사상으로 뿌리내리는 중이었다. 이는 공산당의 노선 결정을 위한 정치적 필요, 혁명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함과 결합을 위해, 그리고 사회 발전 단계에 대한 논쟁으로 일어났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독서잡지』에서는 '중국사회사논전' 특집호를 4책으로 출판했다. 사회사논전은 정책 노선 위주의 논쟁을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중국에 유물사관이 수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곽말약의 『중국고대사회연구』에서는 본격적으로 유물사관에 입각한 시대구분이 시도되기에 이른다. 즉 원시공산체제인 모계 씨족사회, 노예사회, 봉건제 등으로 사회의 발전 양상 단계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 구분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았는데, 특히 논쟁의 초점이 되었던 것은 노예제부터 봉건제로의 변화가 어느 시기인가 였다. 이 논쟁에 여진우, 범문란, 전백찬 등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1957년에는 당시 이론이던 서주를 노예사회, 춘추 이후를 봉건제로 보는 관점을 교육과정에서 채택했다. 1980년대에 이후로믄 이러한 논쟁은 사그러들고, 공식적 역사교육의 이론을 견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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