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최고(最古) 뒤의 단면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은 ‘최고’라는 타이틀로 인해 재조명 받을 수 있었다. 서양의 인쇄법 개발자인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앞선 1377년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 직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으 바꿔놓은 것은 직지가 아닌, 구텐베르크의 인쇄법임을 말이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이 무엇일까? 목적 자체가 상업적이었던 구텐베르크가 더욱 능동적인 개발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독교, 불교의 차이일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문자의 한계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텐베르크가 이용한 문자는 무엇일까. 바로 알파벳이다. 알파벳의 경우, 주조해야 할 금속활자가 A, B, C, D에 몇 가지 부호들을 더해도 60여개 뿐이다. 그에 비해 한자의 경우는 그 숫자가 다 세기도 어렵다. 60여개 종류만 잘 만들면 되는 알파벳에 한자가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바로 한글이 있다. 만약 한글로 금속활자의 주조가 이루어졌다면, 적어도 한자로 했을 때 만들어야 할 활자의 경우의 수보다는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의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오늘날 우리도 그러한데, 한글이 만들어졌던 조선 시대라고 다를까. 그리고 그 때의 기득권이란 결국 한자였다. 한자는 고위층의 문화이며, 그들만 읽을 수 있는 정보 매체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인 한자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에 그야말로 본능적 거부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단다. 구텐베르크는 활자를 왜 만들었을까? 쉽게 말해 돈 많이 벌고 싶어서였다. 비록 그가 그의 말년에는, 그가 개발한 인쇄법으로 돈을 벌어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 역시 교회에 면죄부를 찍어다 주며 돈을 벌었다. 이후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락에 떨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렇다. 당시 사람들 역시 돈을 벌고 싶어했다. 그리고 인쇄법을 개발하게 된다면, 떼돈을 벌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흔한 책인 성경이 당시에는 집의 몇배가 나가는 가격을 호가했다. 이런 사회적 상황은 자연스럽게 구텐베르크와 같은 개인이 인쇄법을 만들도록 유혹했다.
이제 우리나라를 보자. 직지가 처음 만들어진 고려 사회에도 금속활자를 만드는건 개인보다는 국가이고 대중보다는 고위층이었다. 직지는 백운화상에 의해 써졌고, 청주 흥덕사에서 찍혀졌다. 고려 시대에 스님은 사회 고위층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고위층 주도의 금속활자 제작은 조선으로도 이어진다. 조선 태종 역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세종 역시 갑인자라는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사회 고위층이 주도한 결과였다. 사회 고위층은 이런 것을 만들어낸 뒤, 과연 ‘이제 우리의 기득권을 대중에게 나눠줄 수 있겠어!“라고 좋아했을까? 그야말로 아는 것이 힘이었던 시절이다. 즉,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모두 예상대로 기득권의 포기는 당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계속 한자를 찍어냈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를 구성하는 문자 체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금속활자가 그 영향력을 확장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차라리 둘 다 표음문자였으면 다행인데, 한자는 표의문자였기에 더더욱 발목을 잡았다. 그 표의문자가 오랜 기간 만들어온 기득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금속활자를 빨리 만들었다고 칭찬해주고, 영향력을 넓히도록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권이 알파벳으로 대표되는 문자 체계를 가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서양권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러한 알파벳 형태의 문자 체계를 가졌다. 표음문자 알파벳의 영향력은 인쇄법이 나오는 것을 그야말로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그 영향력을 터트려버렸다. 이것이 만든 지식 혁명은 그야말로 인류사 한 획을 그을만한 것이었다.
민족을 구분하는 지표 중 하나가 같은 언어, 문자를 사용하는가라고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 사회 안에 여러 언어나 문자 체계가 공존한다면, 이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바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 문자 외의 지표들 역시 존재한다. 대략 문화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것은 국가 안의 구성원을 통합하는 강력한 힘이다. 직지는 충분히 훌륭한 기록유산임이 사실이다. 우리가 현존 가장 오래된 유산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지를 통해 실패의 단면 역시 볼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애국심이란 오히려 비판의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꽤나 여러 가지 갈등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 같다. 그리고 흔히 역사상 이러한 갈등은 기득권의 잇속을 채워오는 한편, 국가적 입장에서는 악영향을 주어왔다. 또한 이러한 기득권들은 사회 고위층이자, 지배층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위치에 올라가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위치는, 때로는 국가적 입장에서 상황을 돌이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근래 사람들엑 방향성에 대해 돈이면 돈, 지위면 지위같이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종종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의 삶도 우리네 사회도 다각화되어 있다. 우리는 갈수록 다각화된 시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지에게서도 역시 최고(最古)라는 단면만을 보지 말고, 그 속에 다양한 단면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